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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6 성경연구
2011. 2. 26. 14:00

성경연구 Novels or Essays2011. 2. 26. 14:00

이 글에서는 내가 성경을 보면서 생각해 오던 성경 연구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 그렇게 깊이 있게 생각하고 정리한 것은 아니므로 전문적이지도 않고 내 생각이 내일 바뀌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없다는 것을 서두에 미리 밝혀 둔다.

나는 먼저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는 것이 성경 연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 읽었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성경을 한 두번 읽었다고 성경의 줄거리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성경은 상당히 긴 편이고, 어려운 편이며,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분만 가지고 어떤 진리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강해서나 참고서적등을 통해서 내가 직접 읽지 않고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나 또한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권하고 싶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직접 읽으면서 얻는 깨달음의 깊이는 결코 참고서적을 통해 얻을 수 없다. 또한 참고 서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유독 성경에 관해서는 상당히 중요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른 분야는 전문가 집단이 있고, 그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편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전자공학의 경우 저자가 IEEE Fellow라고 하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전문성이 있을 것이다. 분야가 생물학이라면 세부 분야에 따라 Nature/Science 또는 PNAS, Genome Research 같은 논문집에 실린 논문들로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어디에서 Ph.D.를 받았는지만 가지고도 어느 정도의 전문성은 보장된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내 전문 분야는 성경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에 많이 쓰고 있고, 교회에서도 양육 프로그램을 인도하고 있다.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서 성경 분야에는 전문가가 너무 넘쳐나며, 그들은 거의 모든 경우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달리 말해 전문적인 글이 따라야 하는 일반적인 규칙을 (인용, 참고문헌 따위를 명시하는 것) 전혀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참고서적을 그냥 믿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많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당신에게는 위험한 글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는 '믿음'에 관한 문제의 일환으로서 성경 연구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사실' 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성경에 대해서는 '변하지 않는 주장'을 할 수 없다. 모든 연구에서 '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나는 내일이라도 여기에 올렸던 모든 글이 죄다 틀렸다고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다.)
모두가 알다 시피, 성경은 한 부분만 꼬아도 이단이 될 수 있는 미묘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나는 참고서적을 이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스스로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읽어 가면서 자신만의 성경을 보는 방법도 개발하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성경 연구는 매우 어렵고 권하기 힘든 일이 되어 버린다. 말이 좋아서 반복해서 읽으라고 쉽게 말하지, 사실상 일년일독도 쉽지 않다. 특히 일이 있는 사람인 경우 일년일독은 상당한 노력과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것을 10년을 해야 겨우 10독이 된다. 그냥 내 경험상 10독 정도 되니까 대충 윤곽정도 잡히는 느낌을 받았었다. 더구나 나처럼 주석서를 보면서 앞뒤로 확인해 가면서 읽으면, 하루에 1시간씩 읽어도 일년일독이 힘들 정도가 되니, 정말 성경 연구는 결코 쉽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말씀으로 닦인 기반은 잘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진리를 더 잘 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더 수준 높은 믿음을 가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구원을 더 확실히 붙들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즉, 짧게 만난 예수님이 나의 인생 전부를 바꾸고 하나님을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나며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꾸준한 성경 연구를 통한 깨달음과 앎은 그 깊이가 깊다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행위는 비슷한 수준일 지라도 그 깊이가 얕은 경우 쉽게 넘어지거나 시험에 빠질 수 있지만 오랜 기간 성경 연구를 통해 내려진 깊은 뿌리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쉽게 넘어지지 않는 안정성을 보장해 준다.

어떤 경우 바울의 서신들을 보며 이 글을 쓰는 바울의 심정을 뼈저리게 느껴서 그것을 나누기 위해 이야기를 해 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헛도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상대방은 그것을 그냥 가르침으로, 사실로, 진리로 받아들이는 데 반해 나는 '인간 바울'이 당시 처한 환경에서 그런 내용을 글로 남기는 그 심정을 이야기 하는 데에서 오는 괴리가 그 원인이었다. 그러면 꼭 그런 것을 다 알아야 하느냐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거 모른다고 구원 못 받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이해가 낮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누구는 아는데 나는 모르는 그룹에 속해 있을 따름이다. 그런 것을 조금씩 이해해 가면서 느껴지는 희열이 있으며, 성경 인물들의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한계 등을 앎으로 인해 이해의 폭, 관용의 폭이 넓어지기도 한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나는 요즘 들어 더더욱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힘들어 지는 것을 느낀다. 권하고 싶으나, 권하는 순간 너무도 높은 진입장벽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문제 때문에 꺼려진다. 나 역시 요 근래 들어서야 성막에 관한 길고 지루한 출애굽기의 설명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으며, 이제 와서야 지루하게 반복되는 레위기의 제사 제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 역시 나를 약간 좌절스럽게 만들었다. 대체 얼마나 읽었는데 이제서야 거기에서 작은 하나를 발견하는 것인지 안타깝고, 이런 지루하면서도 힘든 과정을 누구에게 권하기는 더욱 힘들 것 같아서 더 좌절스럽다. 나야 원래 두꺼운 책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권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가 더 읽으면 읽을 수록 더 그런 괴리가 커 지리라는 데에서 오는 허탈감 같은 것도 있다. (내가 결코 많이 읽었다는 것이 아니다. 난 꾸준히 읽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을 시작 할 때에는 뭔가 더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냥 이 정도에서 그만 둬야겠다. 앞으로 내 생각이 더 건설적으로 정리되면 다시 고쳐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2011/02/28 - [분류 전체보기] - 참고서적: 주석성경과 그 외 서적들에 내가 참고하는 성경들을 정리해 두었으므로 참고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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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oBeS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