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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에 해당되는 글 1

  1. 2011.02.15 이스마엘
2011. 2. 15. 06:22

이스마엘 Bible Stories2011. 2. 15. 06:22

이스마엘은 '이스마엘 족속'이란 표현까지 다 해서 52번 성경에 등장한다. 다른 성경에는 44번이 나오는 등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봐서 번역상, 발음상의 차이가 약간은 있는 듯 하다.

이 글에서는 이스마엘의 생애에 대해 잠깐 살펴 보고자 한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실수에 의해 태어난 이삭의 경쟁자로서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보통 생각되어 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이 그런 면도 있다. 그런데 이스마엘의 자손 중에서 성경에 자주 등장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족속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예를 들어 롯의 자손인 모압 암몬 족속이나 에서의 자손인 에돔 그리고 아말렉 족속의 출현 빈도에 비하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약간 나오는 내용이라고 해 봐야 상인집단으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자 그러면 이제 이스마엘의 생애에 대해 한번 살펴 보자. (물론 미디안 족속으로 표현되면서 이스라엘과의 다툼도 나오기는 하나, 여하간 이스라엘의 주적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두라를 통해 낳은 아들 중 하나인 미디안과는 어떻게 구별되는 지 또는 구별하지 않고 그냥 대충 이스마엘 족속이라고 불렀는 지는 모르겠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86세 되던 해에 태어났다. (창세기 16:16) 그리고 13세 되던 해에 (아브라함 99세) 할례를 받았다. 창세기 17:23-25에 묘사되는 최초의 할례에서 명시된 피 할례자 2명중의 한 명이 이스마엘이다. 내가 여기에서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스마엘이 그저 그렇게 조연 중의 한 명으로 성경에 나오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이스마엘은 중요 조연 중의 한 명이었고 성경 저자도 그의 비중을 결코 작게 축소시키지 않았다.

비록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큰 언약의 줄기 속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스마엘 역시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태어났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창세기 16:7-15)
그런데 이 배경에는 약간 안타까운 뒷 이야기가 있다. 바로 사라와 관계된 이야기 이다. 사라는 아이가 없었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그녀의 여종이었던 이집트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내어준다. 그리고 아기가 생기자 하갈이 사라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이에 격분한 사라가 아브라함의 묵인 하에 하갈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에 견디지 못한 하갈이 도망을 치게 되는데 그 도망친 장소에서 이 언약을 받는다. 그리고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다.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창세기 16:20)
즉, 하갈만 비밀리에 알고 있던 언약이 아니고 아브라함도 알고 있던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다시 반복된다. 하갈이 언약을 다시 재 확인 받게 되는 과정이 매우 좋지 못했다. 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그러니까 이스마엘의 14세 때에 드디어 사라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게 된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린다는 이유로 사라가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말한다.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창세기 21:8-10)
젖 뗀 직후의 이야기 이므로 이삭은 1~2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15~16세 정도의 청소년 정도의 나이이다. 적어도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파악한 사라의 성격은 편협함이다. 이런 인간까지 들어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울 뿐이다. 어쨌든 그래도 15~16년을 보아 온 정도 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내쫓기를 구한다.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The matter distressed Abraham greatly because it concerned his son. (창세기 21:11)
그도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분명히 마음이 아팠을 것이고,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계속 유지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증거는 창세기의 다른 부분에 어느 정도 암시가 되고 있다. 그것을 글의 말미에 다루기로 하고, 다시 돌아오면,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하신다. (창세기 21:12) 이에 바로 다음 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보내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아브라함이 별다른 뒤를 봐 주지 않고 거의 빈 몸으로 내쫓아 버린다. 그래서 길 중에 갈증과 주림으로 거의 죽게 되는데 그 과정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하갈이 이렇게 절규한다. "내 도저히 내 아들의 죽음을 보지 못하겠다"라고, 그리고 화살 거리 정도로 떨어져서 망연자실 죽어가는 아들을 쳐다보고 있다.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창세기 21:16-20)
이에 하나님께서 다시 역사하시어 살려주심과 동시에 약속을 다시 재확인 해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함께 하시었다고 성경기자는 적고 있다.

이 이후 잠깐 동안 이스마엘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가 127세에 죽게 되는데 당시 이스마엘의 나이는 51세 정도 그리고 아브라함은 137세, 이삭은 37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후 아브라함은 그두라라는 첩을 맞이해서 6명의 아들을 더 두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이들에게 재산을 약간 나누어 주고 이삭에게서 멀리 떠나 살도록 한다.

여기에서 부터 이스마엘이 재 등장 하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죽을 때에 이삭과 이스마엘이 같이 장례를 치루었다. 아브라함이 175세, 이삭 75세, 그리고 이스마엘 89세에 아브라함이 죽게 되는데, 이 장례를 이스마엘이 같이 치루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상당히 새로웠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에게 버림받을 때가 15~16세, 즉 한창 사춘기 때였다. 그리고 사라의 행태로 보아 아마 쫓겨나기 전의 삶도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도 자신의 아비 아브라함이 죽자 장례를 함께 치루었다고 나온다. 이로 볼 때에 이스마엘과 아브라함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 거라고 예측되며, 심지어 이삭과도 그리 나쁜 관계를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후 이삭의 아들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 중 하나와 결혼한 것을 봐도 교류는 계속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또한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쨌든 이제 이스마엘의 이야기는 그가 137세에 죽음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 이야기를 잠깐 보자.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Altogether, Ishmael lived a hundred and thirty-seven years. He breathed his last and died, and he was gathered to his people. (창세기 25:17)
성경에 죽은 나이가 명시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며, 더구나 죽어서 자기 백성에게도 돌아갔다는 표현이 사용되는 인물은 더 적다. 왕들과 초기 조상들 등등 의미있는 사람들에게만 사용된 표현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든 아니든 간에 적어도 창세기 기자에게 있어서 또한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스마엘은 민족의 조상으로 인정받고 있었을 거라고 감히 예측해 본다.

이로써 이스마엘에 대한 글을 마치려 한다. 이스마엘과 떼어 놓고 생각 할 수 없는 이삭의 유년시절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것은 다음 글로 기로 하자. 나는 개인적으로 이삭과 이스마엘 모두 상처많은 유년 시절을 보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스마엘은 너무 안타까운 유소년기를 보내었다. 다만 아브라함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이삭도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에게만큼은 효자였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상처많은 세월을 보내었음에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악감정이 없었나 보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이스마엘에 대한 근거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흑백으로 간단히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는 않다. 약속안에 있으면서도 비열하고 그 바깥에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기록함에 있어서 편향된 관점을 가지고 적지 않고 있다. 다만 그것을 읽는 우리가 마음대로 선입견을 가지고 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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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oBeStable